돈으로 시간을 사는 방법
필자는 이 블로그의 첫 글에서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필자의 의견만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입을 통해 통용되는 상식으로, 시간을 소중히 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사실 돈으로 시간을 살 방법은 존재한다. 뭔가를 산다는 건 그에 준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 상품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 잘못된 상식을 한 번 깨보자.
》 첫 글: 돈과 시간, 당신은 어느 쪽이 중요한가? (클릭)
보험은 왜 탄생했을까?
12세기의 제노바에서는 해상 무역이 발달하며 보험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해상 무역을 하던 상인들에게는 도중에 배가 표류되어 집에 돌아오지 못할 경우 남겨진 가족들에게 가장이 없어진다는 상당한 리스크가 있었다. 초창기의 보험은 선원들이 돌아오지 못할 경우 남겨진 가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여 앞으로 살아갈 자본을 주는 형태로 가장이 없어지는 경제적인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게 해줘 인기를 끌었다.
또 1666년에 푸딩 레인의 한 빵집에서 불이 나 그게 번지고 번져서 런던의 80%를 전소시킨, 이른바 런던 대화재가 발생했다. 당시의 소방 시스템은 국영이 아니라 민영이었는데, 해당 빵집이 소방 시스템에 출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무도 출동하지 않아서 초기 진압에 실패한 것이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영국에서는 제대로 된 소방 시스템이 갖추어지고, 화재보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보험업계는 점차 보장해주는 분야를 넓혀나갔고, 그렇게 오늘날의 다양한 보험 상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수만 개 다양한 보험 상품에서는 한 가지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모두 피보험자의 리스크 회피를 위함이라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부분이지만, 보험의 목적은 사고가 날 경우 단순히 돈을 받는 데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사고에 따르는 예측 불가능한 비용을 매달 내는 정해진 비용으로 바꿔주는 데 있다.
돈으로 시간을 사는 방법
보험은 리스크 회피를 위한 상품이다. 따라서 그 리스크가 발생할 시에는 수익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데, 이때 그 금액은 해당되는 리스크가 발생함에 따라 피보험자가 입는 손실을 감안해서 산정된다. 예를 들어 한 가장이 사고를 당해서 1년 간 노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면, 그 동안의 치료비와 가족의 생활비를 커버할 수 있을 만큼의 금액을 보상해주는 식이다. 그런데 이게 왜 시간을 벌어주는 건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위의 예시와 반대로 그 가장이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한 가장이 사고를 당해서 1년 간 노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이제 그 가족의 주 수입원이 끊겼으니 치료비와 생활비 모두 사고가 나기 전 까지 갖고 있던 돈으로 충당해야 하며, 만약 부족하다면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시간을 투입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또 그 가족 구성원의 평소 역할을 다른 구성원이 맡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또 시간이 허비된다.
가입되어 있을 때와 가입되어있지 않았을 때 - 위의 두 예시에서 알 수 있는 이 둘의 차이는 '시간을 잃느냐?', 그리고 '평소에 돈을 내느냐?'의 여부로, 위쪽 사례를 전반적으로 보면 돈을 내고 시간을 번 꼴이 된다. 즉, 시간을 산 것이다.
하지만...
정말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듯 돈으로 시간을 샀다고 말하기는 좀 애매하다. 우선 '내가 원할 때'가 아니라 '내게 사고가 발생했고, 그에 해당되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을 때'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기업들의 손실방어팀 같은 꼴이다. 이들에게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게 곧 업무 성과인데, 애초에 방어할 손실이 있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렇다면 보험으로 시간을 사는 개념도 일종의 '손실 방어'가 아닌가?
사실 비용을 줄여주는 '손실 방어'라기보다는 단순히 시간적 비용을 금전적 비용으로 옮겨주는 '비용 이전'의 개념에 가깝다. 즉, 단순하게 p만큼 돈을 내면 t만큼 시간을 얻을 방법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방법을 알았다고 해도 여전히 당신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으며, 이를 소중히 여길 필요성 역시 없어지지 않았다. 시간을 사는 건 아주 특수한 경우에만 가능하며, 그의 한도 역시 무제한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