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time

시간관리의 함정

MJ SUNG 2018. 2. 21. 12:00

획일성. 인위적인 틀, 규격대로 행동하는 성질을 뜻한다. 이런 성질은 주로 우리가 잘 모르는 분야의 지식을 습득할 때, 그 분야의 전문가만을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나타난다. 물론 이게 언제나 나쁜 건 아니며, 의학과 같은 분야에서는 오히려 환자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실질적으로 '전문 자격'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분야에서 발생한다. 이런 분야로는 대표적으로 '시간관리'를 들 수 있다.

획일적 시간관리의 한계

계획을 세워라, 멀티태스팅을 하지 말고 하나의 업무에 집중하라... 시간관리의 비결이라며 흔히 소개되는 획일적인 방법들이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을 실행한다고 해서 효율이 올라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이전보다는 효율이 올라가며, 따라서 100%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해냈다는 것 하나만으로 '시간관리를 더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구멍난 페트병에 물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같은 시간 동안 들어오는 물의 양, 즉 수압이 새어나가는 물의 양보다 크다면 페트병의 입장에서 흑자가 발생하면서 물이 채워진다. 하지만 페트병의 입구는 그 크기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들어올 수 있는 수압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페트병에 뚫린 구멍이 이 이상으로 커지는 순간, 아무리 물을 세게 틀어도 적자가 발생한다.

이제 이를 시간관리에 대입해보자. 직장인 F가 있다. F는 페이스북에 중독되어 있으며, 그 정도는 집은 물론 직장에서 일하는 10시간 중 3시간을 온전히 페이스북에 할애할 정도로 심하다. 이 중독 때문에 늘 야근에 시달리던 F는 위와 같은 '시간관리 팁'을 적용해서 퇴근시간까지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더 자주 뜨는 알림 때문에 더 많이 하게 되는 페이스북의 특성상 결국 3시간은 4시간, 5시간이 되었고, F는 이만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시간에는 유동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에게 낭비벽이 있어서 평소에 쓸 돈이 부족하다면, 사업을 통하든, 투자를 통하든 수입을 그만큼 늘리면 '돈이 부족하다'는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된다. 또 당신이 게임에 중독되어 일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게임을 하지 않는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하는 방법으로 '일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문제 역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양쪽 모두 그 문제가 두 배로 심각해지면 어떨까? 전자의 경우 돈을 그만큼 더 벌면 되지만, 인간이 보유할 수 있는 시간의 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후자의 경우는 기존의 방법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시간에는 유동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동성이란, '재화를 얼마나 쉽게 거래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쉽게 말하자면 '회전율'이다. 따라서 유동성이 높으면 쉽게 사고 팔 수 있고, 유동성이 낮으면 사고 파는 일이 어려우며, 유동성이 없다면 거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시간은 이런 재화의 대표적인 예시로, 절대로 시간을 사거나 팔 수 없다는 사실을 독자들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는 본 블로그의 첫 번째 글, '돈과 시간, 당신은 어느 쪽이 중요한가?' 에서 다룬 내용으로,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돈과 시간, 당신은 어느 쪽이 중요한가? (클릭)

'시간관리사 자격증'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일종의 '심리적 자격증'을 만들곤 한다. 물론 실제로는 그 어떤 자격증도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 자격증은 도대체 어떻게 얻는 것이며, 사람을은 무슨 근거로 그 자격증을 믿을까? 자격을 얻는 건 매우 간단하며, 이 자격을 얻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당신은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시간관리 뿐만 아니라 '자격'이라는 개념에 애매한 모든 분야에서 써먹을 수 있으니 잘 알아두길 바란다. 당신의 이름 위에 '[해당 분야]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면 된다.

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한 번도 쓰지 않았을 뿐 사실상 블로그를 통해 시간관리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몰라도, '시간관리 전문가'라는 사람이 준 팁이 정말 필자의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친 적은 없다. 오히려 도움이 된 건 마케팅 전문가, 블로거 등 시간관리가 아닌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공해준 팁이었다.

이는 시간관리가 마케팅이나 블로깅처럼 '단독적인 분야'가 아니라, 글쓰기처럼 다른 분야에 적용해야만 유의미한 결과물이 나오는 '활용을 위한 분야'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필력만 있고 전문 지식은 없는 작가들이 자기개발서를 쓰면 '실질적으로 어떻게 해야 자신을 개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은 부실하고,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노력, 열정, 끈기와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신의 시간은 당신이 가장 잘 안다

본인의 시간관리는 본인에게 맡기자. 이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이 주는 팁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며, 오히려 잘 들으라는 뜻이다. 단지 남의 의견을 듣는 것과, 그 의견을 본인의 생활에게 적용하는 것 사이에는 당신의 판단력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일 뿐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계획을 빡빡하게 세우는 편인데, 느슨하게 세우라는 전문가의 말을 들었다고 바로 후자의 방식으로 바꾸지 말고, 양쪽 모두 고려해본 뒤 당신의 판단대로 하라는 뜻이다.

생각해보자. '시간관리 전문가'들의 경우, 정말 매니저, 비서 등 시간관리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이들 중 대다수는 각자의 업에 맞춰서 시간관리를 한다는 뜻인데, 패션 디자이너의 시간관리법을 건축가가 그대로 적용한다면 같은 효과가 나올 수 있을까?

당신의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신이다. 또 시간관리는 시간을 잘 쓰지 못하는 문제를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최고의 시간관리 전문가는 바로 당신이라는 점을 항상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