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지 마라
시간관리를 다룬 글, 강연을 보면 10개 중 8개에서는 항상 '자투리 시간'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자투리 시간이란, 출퇴근 시간, 업무를 보러 이동하는 시간 등을 말하는데, '이 시간까지 일을 하면 하루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누군가 활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는 어느새 트렌드가 되었고, 시간관리 강사들의 단골 멘트가 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이 주장에 전적으로 반대한다. 언제나 그렇듯, 표면적인 면만 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자투리 시간 활용하기'의 역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라는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출근하는 동안, 퇴근하는 동안 등의 버려지는 시간을 그저 버려지게 놔두지 않고 자격증 공부 등의 일을 하며 활용하라는 얘기로, 취지는 매우 좋다. 또한 이 방법을 적용했을 때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반박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언제나 '적정선'이 존재하듯이 이 자투리 시간을 과하게 활용하라는 주장이 문제를 유발한다.
그들은 3시간 동안 볼 TV를 2시간 동안만 보기 위해서 원하는 방송을 녹화한 다음, 광고를 건너뛰며 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굳이 TV를 2시간씩이나 볼 필요가 있을까? 물론 당신이 '휴가'의 개념으로 가장 좋아하는 취미인 TV를 본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런 계획적인 휴식이 아니라면, 그 날의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하나만 봐도 되지 않는가? 다들 알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면 시청 후의 만족감도 그리 크지 않고, 심지어 허무해지기까지 한다.
필자에게 3시간의 TV를 2시간으로 줄이라는 주장은 마치 버려지지 않아도 될 시간을 버리는 것을 정당화하며, 그 쓰레기를 재활용하자는 의견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물론 결과적으로 1시간이 아껴지기는 하지만, 필자의 대안을 적용한다면 2시간이 아껴진다. 또 그 1시간을 어디에 쓸지는 정했는가?
그만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는가?
시간은 유연하다는 점을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이 말은 같은 10분 동안 누군가에게는 30분의 체감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에게는 1분의 체감 시간이 흐른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자면 전자는 30분 걸릴 일을 10분만에 끝낸 것이며, 후자는 1분 걸릴 일을 10분씩이나 한 것이다. 이는 그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가짐, 그 시간 동안 하는 일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즐기면서 하는 일이 더 빨리 끝나는 현상과 같은 맥락에 있다.
따라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게 시간관리에 미치는 영향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굳이 활용할 필요가 없다. 동기가 뚜렷하고 데드라인이 확실한 일, 예를 들어 평소에 즐겨 하는 게임 내의 파격적인 이벤트 같은 경우 이리저리 시간을 모을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할 시간이 생기기 마련이다. 당신이 가장 원하는 것들, 즉 우선순위의 위쪽에 있는 것들은 이미 아무 문제 없이 하고 있지 않은가? 바빠 죽겠다고 말하는 당신에게는 언제나 스마트폰을 꺼내 알림을 확인할 여유가 있으며, 아침에 스누즈 버튼을 누르고 더 잘 여유가 있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게 물이 증발하지 않도록 진공 포장하는 거라면, 본인의 동기 부여에 신경쓰고 항상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지하는 건 애초에 물이 들어오는 수압 자체를 높이는 것이다. 당신은 전자와 후자 - 어느 쪽에 몰두할 것인가?
'자투리 시간'에서의 가치 창출이 가능한가?
가치 창출이란, 무언가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옹호자들의 의견에 의하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어처피 버려질 시간, 즉 '가치없는 시간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투리 시간이 정말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을까?
사람이라는 아주 복잡한 기계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육체적, 정신적 휴식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육체적인 휴식이 앞으로의 노동에 대비해 영양소를 쌓아두는 '플러스'의 과정이라면, 정신적인 휴식은 이와 반대로 머리를 비우는 '마이너스'의 과정이다. 물론 당신의 계획표 속에는 휴식 시간이 따로 존재하겠지만, 그 계획표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 휴식 시간도 있다. 바로 우리가 버려지는 시간이라 치부하는 '자투리 시간'. 사례를 들어보자.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인 A가 있다고 치자. A는 버스를 타고 가는 10분간 수백 명의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뿐만 아니라 3,300미터가 조금 넘는 길을 지나며 창문 밖의 도시를 경험한다. 통상적으로 '아무런 목적이 없는 것'은 비효율적이지만, 이런 식으로 데드라인이 정해진 '아무런 목적이 없는 시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후자의 경우에는 새로운 영감과 혁신의 원동력이 될 수 있으며, 당신의 뇌를 일상의 틀 밖으로 잠시나마 내보내는 것이다. 1
이렇게 '자투리 시간'은 그 시간만의 가치를 이미 갖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건 기존의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다. 멍 때리면서 자격증 공부를 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은가?
- http://traffic.seoul.go.kr/files/2012/02/58da0a87272879.33007852.pdf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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